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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한 일상

병영문학상 최종

배고픈 돈까스 2021. 8. 28. 00:02

현생(現生)

평생을 잊히는 게 인생 아닐까.

나만큼 잊고, 너만큼 기억하면

내가 편안할까.

나만큼 기억하고, 너만큼 잊어야

내가 행복하지 않을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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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른 1

중앙대학교 재학생 박정욱

논산훈련소 소대장훈련병 박정욱

25사단 의무대대 정작병 박정욱

어른이 된다는 건 이름 주위에 뭐가 많이 붙는다

가면이 하나둘씩 생기는 기분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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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물

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좋더라

머리를 잘라주면서,

미소를 지으면서,

일하면서,

밥을 하고, 밥을 먹으면서,

결국 우리는 모두 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아닐까

 

나에게도 시간을 선물하자

혼자 기억하게 될 이 순간을 추억해보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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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

남는 건 사진뿐이다

눈이 온다

군대에서는 남길 수 없다

글로 기억하려고 한다

정말 하얀색들이 많았다

눈에서는 쇠 맛이 났다

걸으면 눈이 소리를 내고

날씨가 정말 추웠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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습관

노래와 상황, 냄새를 같이 기억한다

중학생

고등학생

대학생

훈련소

의무학교

마다 각각의 노래가 있다

시간이 가면 일부 잊겠지만,

가끔 노래를 들으면서 과거를 추억해볼 수 있다

 

잊힘을 기억하는 데는

노래나 냄새, 소리가 좋다

그래야 막 슬프지도 않고,

딱 잊힘 그만큼만 기억해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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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(無)

현실에 낯설어져 꿈을 꿨다가

현실에 익숙해져 지금으로 돌아온다

항상 꿈을 꾸자

현실에 순응하면 바보가 되니까

이상주의자도, 현실주의자도 아닌 것처럼 살아가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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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쁨, 슬픔

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한 단어로 기억돼

기쁨, 슬픔, 행복, 미안함, 고마움, 따뜻함, 순수함

단어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올라

나는 기쁨일까, 슬픔일까, 행복일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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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가 오면 세상이 바뀐다? 

가게에 갈 때 들리는 발걸음도

친구에게 하는 장난도

먹기로 한 밥도

덕분에 기분도 바뀌는 거지

내일도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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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과생(理科生)

정말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

가끔은 시도 쓰고,

구석에서 혼자 책도 읽으며

야금야금 시간을 먹는 내가

정말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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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늘

가족마다 각자 하나씩 그늘을 가지고 있어

그늘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

그늘은 여유를 못 가지게 하기도 하지

하지만 그늘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,

잠시 쉬어가기도 하는 거야

어릴 땐 아빠가 술주정하는 게 정말 싫었는데,

요즘엔 아빠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

 

그늘이 어둡지만은 않구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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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한궤도(無限軌道)

오늘도 지나가 버렸다

누가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고

또 한 명이 휴가를 갔다 오는 걸 반복하면

마치 군 생활이 끝날 거 같았다

반복되는 하루하루에서

내 태도와 생각은 무한해진다

잊히게 될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

또 깜빡깜빡 순간을 보낸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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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치가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

난 눈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,

눈치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 거였어

갑자기 눈치 없이

전화해서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할 거야

내일 신경 쓰지 않고

너한테 전화해서 고맙다고 할 거야

난 그런 사람이니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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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원

빛의 속도는 유한하다

지금 나는 빅뱅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

누군가 소원을 물어본다면

"우주의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."

라고 말하고 싶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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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

모든 이유는 복합적이다

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도

내가 왜 이런 판단을 하는지도

 

우리는 복합적이라는 걸 잊는다

여러 가지의 이유는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설명되고,

결국 많은 이야기는 사라진다

 

혼란스러운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주면서도

단순히 세상을 보게 해 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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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뜻한 글을 쓰는 방법

내가 쓴 글을 출력했다

갓 태어난 글은 뜨거웠다

이 글은 따뜻할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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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른 2

어른이 된다는 건

어른이 되었다가

다시 어린이가 되는 기분이랄까

가끔 어린이들을 만나면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

"산타할아버지가 어디에 사는지 아니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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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른 3

힘듦을 소화하는 것

힘들면 그냥 가만히 있자

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

그래야 소화가 되니까

 

힘들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

힘들어도 괜찮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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